광주이씨는 현재 율정공파, 둔촌공파, 십운과공파, 석탄공파, 암탄공파의 5대 계파가 있다. 《병진보(丙辰譜) 1856년》에 의하면 율정공파, 둔촌공파, 석탄공파, 암탄공파의 4계파는 그 선대로 올라가면 회안호장으로 강계된 휘 한희(漢希)의 직계후손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려 23대 고종(1213~1259) 때 廣陵三益인 諱 익비(益庇) 익준(益俊) 익강(益康)의 세분 형제는 諱 漢希의 대수미상 후손이며, 廣州李氏의 系譜上 實際 代數는 이 廣陵三益으로부터 비롯되고 廣陵三益 이후의 代數부터가 廣州李氏의 계보상의 실제 代數이다.  栗亭公은 諱 益庇의 7대손, 그리고 遁村公과 十韻科公은 4대손이고, 石灘公과 巖灘公은 諱 익강(益康)의 5대손이다.  廣州李氏의 上代系譜는 광주(廣州)관아에서 아전과 역리로 살아오는 동안 昭穆이 失傳되어 始祖 諱 自成으로 부터 廣陵三益 이전까지800여년간의 昭穆과 실제 代數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구전되는 내용을 종합 정리하면 아래 系譜圖와 같다.

 

 

그러나 이 네 파간의 시조에 대한 의견은 위 系譜圖와 같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광주이씨세보(廣州李氏世譜)》는 조선 明宗祖 때 諱 浚慶 동고상공(東皐相公, 1499~1572)께서 비로소 廣陵世譜를 수즙(修葺)하셨으나 壬辰 兵禍로 회신(灰燼)되었고, 현존하는 최고본인 《경술보(庚戌譜) 1611년, 漢陰相公 校閱序文》를 편찬하였으나 당시에도 시조에 관해 각 파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해 합보하지 못했으며, 《병진보(丙辰譜) 1856년》에서도 각 파의 중시조 이상의 조상의 계보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어 별보(別譜)로 편수 간행하였다. 그러다가 1987년 대동보(大同譜) 간행에 의해 《정묘보(丁卯譜)》로 완전 합보하였다. 그러나 정묘보에서도 광주이씨의 시조를 諱 自成으로 바로 세우지 못하고 둔촌공파의 諱 唐이 시조인 것 처럼 기록하고 편집하는 오류를 범함으로 대동보(大同譜) 합보의 의미를 잃고 말았으며, 더욱이 이로 인한 각 파간에 葛䕨과 不協和音은 광주이씨 통합을 더욱 어렵고 遼遠하게 만들고 말았다.

 

광주이씨는 둔촌공파가 대다수이고 조선조에서 광주이씨의 번영을 주도한 것도 둔촌공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연히 上代 系譜上의 諱 自成을 시조로 섬기는 다른 파가 존재하고 있는데 1천년전  上代의 始祖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中間 派祖인 諱 唐을 廣州李氏의 始祖라고 我執을 부리는 것은 매우 溫當치 못한 處事입니다. 이는 마땅히 先代의 諱 自成을 광주이씨 시조로 바로 세우고 諱 唐을 파조로 모시던가 遁村公派 와 十韻科公派를 派祖로 모시는 系譜體係로 改編되어 廣州李氏의 大統合을 이룰수 있도록 바로잡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