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이씨(廣州李氏) 시조(始祖)는 신라 17대 내물왕시절 내사령을 지낸 이자성(李自成)공(公)이다. 문헌에 의하면 광주이씨는 칠원(함안)에서 대대로 살아온 재력과 권세를 겸비한 집안의 후예로 신라에서 높은 벼슬을 지내왔다.

그러다가 신라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넘기자 광주이씨 가문은 이에 불복하고 절의를 지켰다.

그러자 고려 태조는 광주이씨 벼슬의 품계를 낮춰 회안현(淮安縣) 지금의 광주(廣州)에 역리(驛吏)로 삼았다. 이를 계기로 처음에는 본관을 회안으로 부르다가 940년 고려 태조 23년에 회안의 지명이 광주로 바뀜에 따라 관향도 광주(廣州)로 바뀌었다.

그 이후 광주이씨의 가문은 고려 말에 중흥하여 조선시대에는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대단한 문벌(門閥)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동량지재(棟樑之材)를 배출하면서 번창해왔다.

 

광주이씨의 큰집 손(孫)은 율정공 이관의(栗亭公 李寬義)를 파조(派祖)로하고 석탄공(石灘公), 암탄공(巖灘公)은 이익강(李益康)을 중시조로 하며 둔촌공(遁村公)의 손은 이당(李唐)을 중시조로 이어오면서 둔촌공을 1세로 해왔다.

광주이씨 율정공파 문중은 자성공 시조 묘소를 잘 보존치 못하여 세월이 흘러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천하면서 여러 차례 병화로 인하여 묘소가 실전됨에 따라 광주이씨 큰 집 역할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였던 것을 1988무진년(戊辰年)에 초헌장으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관3리 산29번지에 모시고 매년 시향을 10월 4번째 일요일로 정하여 지내왔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 25일 광주이씨 시조 自成(자성)공의 재실 양악재(陽岳齋)건축을 준공하면서 광주이씨 시조 면모가 갖추어졌다.

 

광주이씨는 윗대로 크게 나누면 둔촌공파, 십운과공파, 석탄공파, 암탄공파, 율정공파 5개파로 나뉘어있다.

광주이씨 시조 자성공은 만세를 이어갈 기틀을 만드시고 천추에 빛나는 업적을 남기시어 후손들 중 훌륭한 학자와  높은 관직을 지내신 분들이 대대로 많이 이어져왔다.

조선조에 동고 이준경(영의정), 한음 이덕형(영의정), 등 문과급제 1백 88명, 무과급제 2백74명을 내었고, 정승 5명, 문형(대제학)2명, 청백리6명, 공신11명을 배출하였다.

 

대한민국건국이래 학문계열의 인문학 및 자연과학과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법조, 의학 등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뛰어난 인재가 속출하고 있음을 어찌 다 기록 하랴 만, 아래와 같이 이 시대에 걸출한 인재 세분을 배출소개 해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하는 행정부 수반인 국무총리(29대)를 역임한 이수성 종원은 전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고, 사법부수장인 대법원장(14대)으로 이용훈 종원이 역임하였으며, (주)삼영화학 명예회장이면서 관정교육재단(재단법인) 명예이사장 이종환 종원은 아시아 최대규모의 개인장학재단을 사재 8천6백억원을 출연 설립하여 30년동안 국내외 5,5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자랑스러운 문중의 거목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국가 발전에 기여한 광주이씨 종원이 혁혁한 공로를 세우는 일이 곳곳에서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나고 있음은 모두가 훌륭하신 선조님의 음덕(蔭德)으로 이루어졌음이 아닌가 한다.